해마는 인간의 기억 시스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뇌 구조로, 새로운 경험을 저장하고 기존 기억을 강화하는 데 필수적인 기능을 담당한다. 특히 장기기억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해마는 정보를 정리·부호화·주소화하는 ‘기억의 관문’ 역할을 하며, 우리가 경험한 사건이나 배운 내용을 적절한 형태로 분류해 대뇌피질로 전달한다. 또한 감정적 자극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특정 기억을 더 선명하게 강화하기도 한다. 이 글은 해마가 어떻게 작동하고 어떤 방식으로 기억을 저장하는지, 그리고 왜 해마 손상이 기억력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는지를 뇌과학적으로 자세히 설명한다. 수면, 감정, 반복 자극 등 다양한 요인이 해마의 기능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도 함께 다루어 학습과 기억 향상을 위한 실질적 통찰을 제공한다.

해마의 구조와 기억에서의 위치
해마(hippocampus)는 대뇌변연계 깊숙한 곳에 자리한 작은 해마 모양의 구조로, 새로운 정보를 장기기억으로 전환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우리가 어떤 사건을 경험하거나 새로운 사실을 배울 때, 이 정보는 먼저 해마에서 처리된다. 해마는 단순한 저장소가 아니라, 정보를 분류하고 구조화하며 다른 뇌 영역으로 전달하는 ‘기억 처리 센터’에 가깝다. 특히 일화기억, 즉 개인적인 사건이나 체험을 저장하는 과정에서 그 중요성이 크다. 우리가 어릴 적 가족 여행, 첫 직장 경험, 중요한 대화 등을 생생히 떠올릴 수 있는 이유는 이 기억들이 해마를 통해 잘 부호화되었기 때문이다. 해마는 양쪽 대뇌에 대칭적으로 존재하며, 기억 형성을 위한 입력과 출력을 담당하는 복잡한 회로를 가지고 있다. 이 회로는 정보를 빠르게 받아들이고 분석한 뒤, 장기기억 저장을 위해 대뇌피질 여러 영역으로 보낸다. 이 과정을 ‘기억 통합(memory consolidation)’이라고 하며, 이는 수면 중 특히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그래서 충분한 수면이 기억력 향상에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해마 손상은 기억력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해마 기능이 손상되면 새로운 정보를 장기기억으로 전환하지 못하는 ‘전향성 기억상실’이 발생할 수 있다. 이 현상은 유명한 환자 H.M. 사례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그가 해마를 수술로 제거한 이후, 새로운 기억을 거의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점은 해마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해마는 단순한 기억 저장 장소가 아니라, 기억이라는 복잡한 인지 시스템의 출발점이자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해마가 수행하는 기억 부호화 과정
해마의 핵심 기능은 새로운 정보를 ‘부호화(encoding)’하는 것이다. 부호화란 단순한 정보 입력이 아니라, 얻어진 정보를 이해 가능한 형태로 변환하는 작업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이름·표정·목소리·장소 등 다양한 정보가 해마로 들어온다. 해마는 이 요소들을 즉시 정리해 하나의 기억으로 묶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통합 처리는 해마의 내부 회로인 치아이랑(Dentate gyrus), CA1, CA3 영역을 통해 체계적으로 이루어진다. 해마의 또 다른 중요한 기능은 기억의 ‘주소’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뇌 속 기억은 한 장소에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의미적 정보는 측두엽·전두엽·두정엽 등 여러 영역에 분산 저장된다. 해마는 마치 도서관 사서처럼 정보가 어디로 이동해야 하는지를 결정하고, 필요할 때 이 정보를 다시 찾아 활성화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주소화 기능 덕분에 우리는 특정 기억을 떠올릴 때 여러 감각 정보가 동시에 재생되는 경험을 한다. 또한 감정은 해마의 부호화 과정에 깊게 관여한다. 해마와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는 편도체는 감정을 처리하는 센터로, 감정이 강할수록 편도체는 해마에 강력한 신호를 보내 기억 부호화를 강화한다. 그래서 기쁨, 공포, 충격, 슬픔과 같은 감정적 사건이 평생 기억에 남는 반면, 감정이 거의 없는 반복적인 일상은 쉽게 잊힌다. 이는 감정이 기억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라는 의미다.
기억 저장과 수면, 반복 자극의 영향
해마는 새로운 정보를 ‘영구 저장’ 하지 않는다. 해마의 역할은 정보를 잠시 유지하고 구조화해 장기적으로 저장될 수 있는 형태로 가공하는 것이다. 실제 장기기억은 대뇌피질에 저장되며, 해마는 이 저장 과정의 중개자 역할을 한다. 이때 중요한 과정이 바로 ‘기억 통합(memory consolidation)’이다. 이 통합은 우리가 깨어 있는 동안뿐 아니라 수면 중 특히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수면 연구에 따르면, 해마는 수면 중 하루 동안 입력된 정보를 재생하며 대뇌피질로 반복적으로 신호를 보낸다. 이 과정에서 시냅스가 강화되고, 연결 회로가 안정되며, 기억이 장기 형태로 정착된다. 특히 깊은 수면 단계(NREM)는 사실적 지식과 운동기억을 강화하고, REM 수면은 감정적 기억의 통합을 촉진한다. 반복 학습 역시 해마 기능을 강화하는 데 핵심적이다. 같은 정보를 여러 번 접하면 해마-피질 간 회로가 더 안정적으로 연결되고, 시냅스 장기 강화(LTP)가 일어난다. LTP는 두 뉴런이 반복적으로 함께 활성화될 때 신호 전달 효율이 증가하는 현상으로, 장기기억 형성의 대표적인 생물학적 기반이다. 그래서 벼락치기보다 반복 학습이 훨씬 효과적이며, 정기적인 복습이 기억을 오랫동안 유지하도록 돕는다.
해마의 작동 원리를 이용한 기억 향상 전략
해마가 기억 형성에서 맡는 역할을 이해하면 학습 효율을 극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우선 장기기억 형성을 위해서는 주의 집중과 감정적 의미가 중요하다. 흥미를 느끼거나 의미 있는 정보일수록 해마의 부호화가 강화되고, 기억이 더 오래 유지된다. 학습할 때 새로운 정보와 기존 지식을 연결하거나 실제 생활 맥락과 결부시키면 부호화 효과가 더욱 커진다. 또한 해마는 수면의 질에 크게 의존한다. 충분한 수면을 취하면 해마가 하루 동안 얻은 정보를 정리하고 대뇌피질로 안정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반대로 수면 부족은 해마의 신경가소성을 약화시키고, 기억 통합을 방해한다. 규칙적인 수면은 곧 기억력 향상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학습자에게 필수적이다.
반복 학습 역시 해마 기능을 강화하는 핵심 전략이다. 반복적으로 정보를 복습하면 시냅스 강화가 이루어지고, 해마-피질 연결 회로가 더 튼튼해진다. 이 과정은 이해 기반 학습뿐 아니라 운동 기술, 언어 학습, 문제 해결 능력 향상에도 큰 도움을 준다. 해마의 작동 원리를 학습에 적극 활용한다면, 누구든지 더 강력하고 지속적인 기억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