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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물화의 정서 (여백, 간결함, 상징)

by 라이프 리뷰 2025. 10. 4.

일본 정물화의 여백 나타내는 사진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물들에 더 깊이 끌릴 때가 있다. 말 대신 시선으로 이야기를 건네는 찻잔, 빛을 조금 머금은 꽃잎 한 조각,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조용한 공간. 나는 그런 장면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속의 소음이 사라지는 듯한 감정을 느낀다. 그 조용함은 결코 비어 있지 않다. 오히려 너무 많은 것을 품고 있어, 감히 말을 붙일 수조차 없다. 일본 정물화는 그런 고요의 기술을 안다. 여백과 간결함, 그리고 상징으로 이야기하는 이 장르는, 단순한 미술을 넘어 사유의 통로가 된다. 이 글을 통해 우리는 일본 정물화가 어떻게 감정과 철학, 그리고 문화를 담아내는지를 함께 들여다보고자 한다. 독자 여러분이 이 글을 마주한 후에는, 일상 속 사물 하나를 바라보는 눈길이 조금 더 부드러워지고, 조금 더 깊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일본 정물화의 정서: 여백의 의미

처음 일본 정물화를 마주했을 때, 나는 낯설었다. 화면의 대부분이 비어 있었고, 중심에서 조금 비켜난 곳에 사물 하나가 놓여 있었다. 찻잔, 혹은 떨어진 꽃잎, 때로는 조용히 꺾인 나뭇가지 하나. 이토록 단순한데도, 어딘가 멈춰 서서 한참을 바라보게 되는 힘이 있었다. 그 빈 공간이 내 감정을 끌어당기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내 안의 무언가를 건드리고 있었다. 일본 미술에서의 여백은 단순한 디자인의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철학이며, 감정의 확장이다. 이 여백은 자리를 남겨두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스스로 존재감을 가진 감정의 무대다. 불교적 사유에서 출발한 ‘무(無)’의 개념은 일본 예술의 핵심 기저를 이룬다. 정물화에 등장하는 사물들은 여백 속에서 더 선명하게 살아난다. 사물이 중심이 되지 않고, 여백 속에서 흐르며, 감정이 가라앉는다. 에도 시대(1603–1868), 일본의 정물화는 무로마치 시대의 선(禪) 정신을 이어받으며 내면을 바라보는 시각을 확장해 왔다. 스미에의 영향 아래 정물은 단순히 ‘보여주는 대상’이 아닌, ‘함께 존재하는 사유의 징표’가 되었다. 그림을 본다는 것은, 그 여백 속에 머무른다는 뜻이기도 했다. 현대에 와서도 일본 정물화는 여전히 여백의 미를 유지하며, 삶에 지친 이들에게 쉼의 공간을 제공한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너무 많은 이미지와 정보로 가득 차 있다. 일본 정물화는 그 모든 과잉을 잠시 멈추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공간’에 감정을 앉힌다. 그것이야말로 여백이 가진 가장 큰 의미다. 여백은 곧, 우리가 다시 숨을 쉴 수 있는 자리다.

간결함은 단순함이 아니라, 모든 것을 비워낸 후에 남는 본질이다

나는 언젠가 교토의 작은 화랑에서 한 점의 정물화를 마주한 적이 있다. 그것은 너무도 단순한 이미지였다. 나무 위에 올려진 도자기 찻잔 하나, 그 옆에 조용히 놓인 나뭇잎 하나. 배경은 거의 흰색에 가까운 회색의 번짐으로 처리되어 있었고, 선도, 색도 모두 최소한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나는 그 앞을 떠날 수 없었다. 마음이 묘하게 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간결함’이 전하는 정서였다. 간결함은 일본 미학의 핵심이다. ‘와비사비’라는 개념 속에는 완전함보다 불완전함, 화려함보다 소박함, 새것보다 오래된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시선이 깃들어 있다. 일본의 정물화는 이 철학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닳은 찻잔, 금이 간 도자기, 시들어가는 꽃 한 송이. 그 모든 사물은 생명력을 잃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감정을 품는다. 예술가의 심리 역시 간결함 속에서 깊어진다. 19세기말, 메이지 유신을 거치며 일본은 서양 문물의 거센 물결 속에서도 전통을 지키려 했다. 그 시기 화가들은 복잡하고 세밀한 묘사를 버리고, 대신 간결한 선과 색으로 진심을 표현했다. 이는 시대의 혼란 속에서 자신을 지키려는 내면의 울림이자, ‘본질로 돌아가려는’ 저항이었다. 이러한 간결함은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미니멀리즘 디자인, 단순한 공간 구조, 여백 중심의 감성 표현 등은 모두 일본 정물화의 철학과 닿아 있다. 간결함은 정보가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잉된 시대 속에서 감정을 정리해 주는 언어다. 그리고 그 언어는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 “비우는 만큼, 더 많이 느낄 수 있다.”

상징이 담긴 사물 하나, 그 속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보다

그림 속에서 가장 조용한 사물들이 가장 큰 이야기를 들려줄 때가 있다. 일본 정물화는 그런 방식으로 말한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대나무 조각 하나, 국화 한 송이, 바람에 날리는 낙엽 하나. 그것들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일본 회화에서는 언제나 ‘무언가를 상징’한다. 그것이 정물화가 사유를 이끌어내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일본의 예술에는 상징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 대나무는 강직하지만 휘어지며, 국화는 늦가을의 끝자락에 피어 장수를 뜻한다. 떨어진 꽃잎은 인생의 덧없음, 즉 ‘무상(無常)’을 말한다. 이러한 상징은 종교적, 철학적 기반과 맞닿아 있으며, 그 안에는 ‘죽음을 품은 아름다움’이라는 아이러니가 늘 숨겨져 있다. 일본인에게 있어 ‘아름답다’는 것은 곧 ‘사라질 수 있다’는 것과 동일한 감정이다. 정물화 속 상징은 개인의 기억과 감정까지 불러일으킨다. 어떤 이는 낡은 찻잔을 보고 어머니의 주방을 떠올리고, 어떤 이는 떨어진 국화를 보고 첫사랑의 끝을 기억한다. 일본 정물화는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상징으로 남겨두고, 감상자의 경험과 감정을 조용히 초대한다. 그리고 그 상징은 작가 자신에게도 치유의 과정이 된다. 전후 일본 사회에서 예술가들은 파괴된 도시와 상처받은 공동체 속에서, 무너진 일상의 조각들을 정물화로 그려냈다. 사물 하나하나는 삶의 일부였고, 상징을 통해 그들은 다시 삶의 질서를 회복해 나갔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이런 상징 속에서 위안을 찾는다. 말이 필요 없는 사물들이 조용히 들려주는 이야기. 그것이 일본 정물화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감동을 주는 이유다.

일본 정물화는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침묵은 무거운 것이 아니라, 사려 깊고 따뜻하다. 여백은 우리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고, 간결함은 감정을 정리할 수 있는 공간을 내어준다. 그리고 상징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힘을 길러준다. 삶은 본디 복잡하고 거칠다. 우리는 많은 것을 말해야 하고, 표현해야 하며, 매일 수많은 이미지 속에서 떠밀린다. 그러나 그럴수록 일본 정물화는 조용히 다가와 말한다. “잠시 멈춰도 괜찮다. 이 작은 사물 안에도, 너의 감정이 있다.” 예술은 어쩌면, 우리가 삶을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아름답게 살아가기 위한 안내서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일본 정물화는 그 안내서 중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깊은 페이지다. 이 글을 통해 당신의 하루도, 잠시 멈춰 설 수 있기를 바란다. 그 고요 속에서, 당신만의 정서를 만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