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구조는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괜찮다’는 판단이 쉽게 내려지지 않았다. 일정은 유지되고 있었고 해야 할 일도 해내고 있었지만, 몸과 마음은 그 상태를 더 이상 자동으로 정상으로 분류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이 글은 컨디션이 나빠졌다는 감각을 설명하려는 글이 아니다. 오히려 생활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데도, 컨디션을 판단하는 기준 자체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 과정을 기록한 글이다.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전과 다른 감각으로 하루를 살아가게 되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나약함이 아니라 내부 기준의 정교화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경험 중심으로 풀어낸다.

같은 하루를 살고 있는데, 컨디션을 보는 시선만 달라졌을 때
그날도 하루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게 흘러갔다. 특별히 무리한 일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잠을 거의 못 잔 날도 아니었다. 해야 할 일은 대부분 해냈고, 하루의 구조 역시 무너지지 않았다. 겉으로 보면 이전과 비교해 눈에 띄는 차이는 없었다. 그런데 하루를 마친 뒤, 이상하게도 “오늘은 괜찮다”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이 정도면 충분히 정상이라고 넘겼을 상태였다. 피곤하긴 했지만 견딜 수 있었고, 잠을 조금 더 자면 회복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컨디션이 확실히 나쁘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괜찮다고 말하기에도 어딘가 마음이 걸렸다. 나는 이 애매한 감각을 처음에는 단순한 컨디션 기복으로 해석하려 했다. 누구에게나 있는 날이라고,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넘기고 싶었다. 하지만 비슷한 날들이 반복되면서, 나는 처음으로 다른 가능성을 떠올리게 되었다. 문제는 컨디션이 나빠진 것이 아니라, 내가 컨디션을 판단하는 기준 자체가 달라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이전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몸과 마음이 더 이상 그 상태를 자동으로 ‘정상’으로 분류하지 않는다는 감각. 이 글은 바로 그 인식의 변화가 시작된 지점을 따라가는 기록이다.
생활은 유지되는데 ‘괜찮다’는 판단이 멈춘 이유
이 변화의 가장 혼란스러운 지점은 생활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일정은 돌아가고 있었고, 해야 할 일도 해내고 있었다. 주변에서 보기에는 여전히 이전과 비슷한 하루를 살고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마음속에서는 계속해서 확인 질문이 올라왔다. “이 상태를 계속 정상으로 봐도 되는 걸까.” 예전에는 하루를 끝낼 수 있으면 충분했다. 피곤해도, 약간 무기력해도 “다들 이 정도는 살지”라는 말로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그 설득이 잘 되지 않았다. 하루를 버텼다는 사실과, 하루를 잘 보냈다는 감각이 더 이상 같은 의미로 이어지지 않았다. 하루는 끝낼 수 있었지만, 그 뒤에 남는 여유와 회복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시기의 나는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더 혼란스러웠다. 완전히 지쳤다면 이유를 설명하기 쉬웠을 텐데, 애매하게 유지되는 상태에서는 기준을 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몸과 마음은 이미 같은 상태를 더 이상 ‘통과’시키지 않고 있었다. 이전에는 문제없다고 넘겼을 컨디션을, 이제는 다시 들여다보라고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때 나는 처음으로 하루를 평가하는 질문이 바뀌고 있다는 걸 자각했다. “오늘을 끝냈는가”에서 “이 상태로 계속 가도 되는가”로. 이 질문이 생긴 순간부터, 이미 컨디션을 판단하는 기준은 이전과 달라지고 있었다.
컨디션이 나빠진 게 아니라 기준이 더 정교해졌다는 인식
나는 한동안 이 변화를 스스로의 약함으로 해석했다. 예전에는 해내던 것들이 버겁게 느껴진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고,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다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곰곰이 돌아보면, 내가 갑자기 더 많은 일을 하게 된 것도 아니었고 생활 패턴이 급격히 바뀐 것도 아니었다. 달라진 것은 상태를 평가하는 내부 기준이었다. 예전에는 ‘움직일 수 있으면 괜찮다’가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움직인 뒤 회복이 가능한가’가 기준이 되었다. 이 변화는 아주 조용하게 일어났다. 특정 사건이 계기가 된 것도 아니었고, 극단적인 피로가 한 번에 몰려온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별일 없는 날들이 반복되면서, 이전에는 무시했던 신호들이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이 지점에서 나는 컨디션을 끌어올려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게 되었다. 대신 다시 정의해야 할 기준으로 보기 시작했다. 지금의 나에게 ‘괜찮다’는 상태는 무엇인지, 어디까지를 정상으로 볼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이 질문은 나를 멈추게 하기 위한 질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무너지지 않기 위해 필요한 질문에 가까웠다.
기준이 달라지자 하루를 해석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기준이 달라지자 하루를 바라보는 시선도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이전에는 ‘얼마나 해냈는가’가 하루의 평가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얼마를 소모했는가’가 함께 고려되었다. 같은 일을 해도 어떤 날은 감당 가능했고, 어떤 날은 그 이상의 비용을 요구했다. 이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다음 날의 컨디션이 더 불안정해진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컨디션을 회복시키는 방법보다, 컨디션을 판단하는 언어를 바꾸는 쪽을 선택했다. ‘괜찮다’와 ‘버틸 수 있다’를 구분했고, ‘지금 가능하다’와 ‘내일까지 이어질 수 있다’를 나눠 보기 시작했다. 이 변화는 나를 느리게 만들기 위한 선택이 아니었다. 오히려 생활을 지속 가능하게 유지하기 위한 현실적인 조정이었다. 이 글을 통해 남기고 싶은 기록은 분명하다. 생활이 무너지지 않았다고 해서, 이전과 같은 기준으로 자신을 계속 평가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컨디션이 나빠졌다는 감각보다 먼저, 컨디션을 판단하는 기준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당신이 약해진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당신의 기준이, 이제 더 정확해졌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