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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먼저 속도를 늦추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 날

by mynews48106 2026. 2. 1.

아직 멈출 필요가 없다고 믿고 있던 시기가 있었다. 일상은 유지되고 있었고, 해야 할 일도 해내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하루들이 이어졌지만, 어느 순간부터 행동 하나하나에 설명하기 어려운 지연이 생기기 시작했다. 바로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은 순간에 몸이 먼저 머뭇거렸고, 예전처럼 속도를 끌어올리고 싶다는 마음도 자연스럽게 생기지 않았다. 이 글은 번아웃이나 휴식의 필요성을 말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인식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속도를 늦추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이해하게 된 과정을, 시간의 흐름과 선택의 변화를 따라 기록한 글이다. 느려졌다는 변화를 실패나 후퇴로 해석해 온 관성에서 벗어나, 몸의 판단이 어떤 방식으로 먼저 작동하고 있었는지를 다시 바라보고 싶은 사람을 위한 기록이다.

 

몸이 속도를 늦추고 있어 공원에서 천천히 걷는 남자

아직 괜찮다고 믿고 있었던 시기의 작은 어긋남

그 시기의 나는 스스로를 아직 멈출 단계에 오지 않은 상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정은 과도하지 않았고, 하루를 포기해야 할 만큼의 사건도 없었다. 해야 할 일은 대부분 해내고 있었고, 주변에서 보기에도 크게 문제 될 만한 변화는 없어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몸에서 나타나는 미세한 변화들은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다만 하루를 아주 천천히 되짚어 보면, 이전과는 다른 장면들이 반복되고 있었다. 예전에는 바로 움직이던 순간에 괜히 한 박자 늦어졌고, 자연스럽게 결정하던 일 앞에서 이유 없이 망설이게 되었다. 몸이 완전히 멈춘 것도 아니었고,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지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바로 할 수 있음’과 ‘실제로 움직임’ 사이에 아주 얇은 간격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간격은 처음에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단순한 집중력 저하나 컨디션 문제로 해석했다. 아직은 괜찮다고, 누구나 그럴 수 있는 시기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오히려 이런 변화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과민한 반응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시기는 무너지기 직전이 아니라 몸이 이미 다른 기준으로 하루를 재조정하고 있던 시작점이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지만, 몸은 이전의 속도를 그대로 유지하기에는 무리가 쌓이고 있다는 판단을 이미 내리고 있었다. 문제는 그 판단을 내가 너무 늦게 알아차렸다는 점이었다.

몸이 먼저 속도를 늦추고 있었다는 신호의 흐름

이 시기의 가장 큰 특징은 마음과 몸의 속도가 점점 어긋나고 있었다는 점이다.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계획이 돌아가고 있었고, 해야 할 일 목록도 줄어들지 않았다. 아직은 버틸 수 있다는 생각이 반복되었고, 그래서 나는 몸의 미세한 저항을 무시한 채 예전의 속도를 유지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 시도는 생각보다 자주 어긋났다. 집중은 오래 유지되지 않았고, 사소한 자극에도 쉽게 피로해졌다. 하루를 마친 뒤 남는 피로는 단순한 육체적 피곤함이라기보다, 계속해서 나를 끌고 온 흔적에 가까웠다. 이상했던 점은 몸이 완전히 멈춘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고, 일상은 유지되고 있었다. 다만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이 느려짐을 조정이 아니라 결함으로 해석했다. 속도가 떨어졌다는 건 곧 뒤처진다는 의미처럼 느껴졌고, 이전의 나답지 않다는 증거처럼 받아들였다. 그래서 몸의 신호를 받아들이기보다는, 다시 가속해야 할 문제로 몰아갔다. 이 해석은 나를 더 조급하게 만들었고, 조급함은 다시 몸을 긴장시켰다. 하지만 긴장은 에너지를 회복시켜 주지 않았다. 오히려 하루를 더 소모하게 만들 뿐이었다. 이 시기에는 관계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은근히 부담스러워졌고, 설명이 필요한 상황을 무의식적으로 피하게 되었다. 지금 돌아보면 이것 역시 몸이 보내던 신호의 일부였다. 에너지가 제한된 상태에서 불필요한 소모를 줄이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이런 변화들마저 태도 문제로만 해석하며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느려짐을 실패가 아닌 몸의 판단으로 받아들이게 된 이후

결정적인 전환은 아주 사소한 순간에 찾아왔다.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넘겼을 일을 앞두고, 더 이상 밀어붙이고 싶지 않다는 감각이 분명하게 올라왔다.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내가 무너지고 있는 게 아니라, 몸이 먼저 나를 보호하려고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인식 이후로 과거의 장면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행동이 느려졌던 이유, 선택을 미뤘던 이유,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난 이유가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몸은 한계를 넘어서기 직전까지 버틴 것이 아니라, 훨씬 이전부터 속도를 조절하며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다만 나는 그 신호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을 뿐이다. 이 글을 이렇게 길게 남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몸이 먼저 속도를 늦추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실패나 후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기록하고 싶었다. 느려진다는 것은 무너졌다는 증거가 아니라, 방향을 조정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조금 다른 속도로 가야 한다는 판단이 이미 내려졌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생각보다 훨씬 이른 시점에 몸이 먼저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