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부터 사소한 말에도 마음이 크게 흔들리고, 작은 일정에도 긴장이 먼저 올라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감정이 예전보다 과해졌다고 생각했고, 스스로를 예민해졌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시간을 두고 되짚어보니 문제는 감정이 아니라 ‘여유’였다. 같은 감정도 여유가 있을 때는 지나가지만, 여유가 줄어들면 감정은 몸과 마음을 가득 채운다. 이 글은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말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감정을 감당할 여유가 줄어들 때 삶의 감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 시기를 지나며 내가 바꾸게 된 해석의 기준과 여유를 회복하기 위해 현실적으로 점검했던 지점들을 경험 중심으로 기록한 글이다.

감정이 커졌다고 느꼈던 순간, 설명되지 않던 불편함
어느 날부터 감정이 예전보다 크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사소한 말에도 마음이 쉽게 흔들렸고, 평소라면 넘길 수 있었을 일정에도 긴장이 먼저 올라왔다. 특별히 힘든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삶의 구조가 크게 바뀐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유를 나 자신에게서 찾았다. 내가 예민해졌거나, 감정 조절이 약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해석은 이상하게도 마음을 편하게 해주지 않았다. 감정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할수록 오히려 더 피곤해졌고, 감정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감정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 감정이 정말 커진 걸까, 아니면 감정을 감당하던 여유가 먼저 줄어든 건 아닐까. 이 질문은 감정 자체를 분석하기 위한 질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여겨왔던 ‘여유’라는 상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이었다. 여유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감정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자 삶을 완충해 주는 기반이다. 이 글은 감정이 폭발한 이유를 성격이나 의지로 설명하지 않고, 여유라는 자원이 줄어들 때 삶의 감각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경험의 흐름 속에서 따라간다.
감정이 커진 게 아니라, 감당할 여유가 줄어들었던 시기의 공통점
여유가 줄어들었던 시기는 큰 사건보다 작은 장면들로 먼저 드러났다. 알람이 조금 늦게 울렸을 뿐인데 하루 전체가 불안해졌고, 예정에 없던 연락 하나에도 마음이 급해졌다. 해야 할 일이 갑자기 늘어난 것도 아닌데, 하루를 시작할 때부터 이미 ‘남은 공간’이 거의 없는 느낌이었다. 이 시기의 감정은 유독 빠르게 커졌다. 평소라면 잠깐 불편하고 지나갈 일이, 그때는 곧바로 짜증이나 불안으로 이어졌다. 나중에 돌아보면 감정이 커진 것이 아니라, 감정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이미 좁아져 있었다. 여유가 줄어들면 감정은 더 빨리 바닥에 닿는다. 작은 자극도 완충 없이 바로 반응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이 시기에는 ‘회복할 틈’이 부족했다. 잠은 잤지만 깊게 쉬지 못했고, 쉬는 시간은 있었지만 머릿속은 계속 돌아갔다. 여유가 줄어든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이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라, 마음이 멈출 수 있는 틈이 사라진다는 의미였다. 그 틈이 사라지자 감정은 갑자기 커진 것처럼 느껴졌고, 나는 그 변화를 감정 문제로만 해석했다. 그동안 나는 감정을 기분이나 성격의 문제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감정이 과해진 날들의 공통점은 ‘여유의 고갈’이었다. 여유가 줄어들면 같은 감정도 더 무겁게 느껴지고, 더 오래 남는다. 이 사실을 인식하기 전까지 나는 감정을 탓하며 여유의 감소를 계속 방치하고 있었다.
감정을 탓하는 동안, 여유의 통장은 조용히 비어 갔다
문제는 내가 이 변화를 감정 문제로만 해석했다는 점이었다. 예민해진 나를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고, 더 침착해져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하지만 여유가 없는 상태에서 감정만 통제하려 하면, 결국 더 큰 긴장만 남는다. 이 시기에 나는 자주 “괜찮다”는 말을 했다. 진짜 괜찮아서가 아니라, 괜찮다고 말하면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괜찮다고 말하면 질문이 줄고, 정리해야 할 것도 줄어든다. 하지만 그 말은 여유를 회복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괜찮다는 말로 덮어두는 동안, 여유의 통장은 계속 비어 갔다.
여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지 않는다. 작은 소모들이 쌓여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는다. 이 시기에는 특히 ‘작은 비용’이 늘어난다. 짧은 대화, 사소한 결정, 작은 일정 변경 같은 것들이 모두 부담으로 느껴진다. 감정이 커진 게 아니라, 감정을 감당할 여유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더 무겁게 들어왔던 것이다. 이 사실을 인정하면서부터 나는 질문을 바꾸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예민해졌지”가 아니라 “지금 여유가 얼마나 남아 있지”로. 이 질문 하나가 감정과 나 자신을 분리해서 바라보게 만들었다.
여유를 회복하기 위해 내가 먼저 바꾼 기준
여유를 다시 만들기 위해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생활을 크게 바꾸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상’이라고 여겼던 기준을 조정하는 일이 먼저였다. 예전에는 하루를 끝내는 것만으로도 스스로에게 합격을 줄 수 있었지만, 그 시기에는 하루를 끝냈더라도 회복이 불가능하면 합격이라고 부르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버틸 수 있다’와 ‘괜찮다’를 구분하기 시작했다. 버틸 수 있다고 해서 괜찮은 것은 아니었다. 그 차이를 인정하는 순간부터 여유는 아주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또 하나 바꾼 것은 반응의 속도였다.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 바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잠시 멈추는 시간을 두었다. 이 짧은 간격이 감정이 지나갈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이 시기를 지나며 내가 얻은 결론은 분명하다. 감정이 커졌다고 느껴질 때, 반드시 감정부터 고치려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감정은 여유의 크기에 따라 달라 보인다. 여유가 줄어들면, 같은 감정도 더 크게 느껴질 뿐이다.